강동 6주가 평안북도라는게 쓰다 소키치의 식민사관이라고?
강동 6주가 평안북도라는게 쓰다 소키치의 식민사관이라고?
//대한제국 중등교과 동국사략 상上편의 2차 고려거란전쟁 서기 1010년에 대한 내용
[ 목종(穆宗)이 강조(康兆)에게 시해당한 후인 현종(顯宗) 원년(1010), 즉 지금으로부터 896년 전1)에 거란[契丹] 왕 성종(聖宗)이 보병과 기병 40만을 이끌고 칭하여 이르기를 의군천병(義軍天兵)이라 하였다. 강조의 죄를 묻는다 하고 압록강(鴨綠江)을 건너 흥화진(興化鎭)【평안도 의주(義州) 속현(屬縣)】을 포위하였다. 현종이 강조와 안소광(安紹光)에게 방어하게 하였다. 강조가 통주(通州)【평안도 선천(宣川)】에 출병했다가 거란 군사[丹兵]에게 피살되었다. 거란 군사가 서경(西京)으로 진격하자 왕이 중랑장(中郞將) 지채문(智蔡文)을 보내 도우라 하였다.
지채문이 서경에 이르러 항복하는 자를 죽이고 성문을 닫고 굳게 지키다가 달아나 되돌아가서 서경의 패배 소식을 왕에게 알렸다.
1) 원문에는 897년 전으로 되어 있으나, 896년 전으로 바로잡는다.
원문확대 축소
穆宗이 康兆의게 被弑 後、 顯宗 元年、 距今 八百九十七年 前에 契丹主 聖宗이 步騎 四十萬을 率고 號曰、 義軍天兵이라 康兆의 罪 問다 稱고 鴨綠江을 渡야 興化鎭【平安道 義州 屬縣】을 圍거 顯宗이 康兆와 安紹光을 命야 防禦라、 니 康兆가 通州【平安道 宣川】에 出兵다가 丹兵의게 被殺고 丹兵이 西京을 進攻거 王이 中郞將 智蔡文을 遣야 救援라、 니
蔡文이 至야 降者 誅고 門을 閉고 固守다가 奔還야 西京의 敗報 奏지라
]
// 흥화진이 평안도 의주 속현이라고 적혀 있고
통주는 평안도 선천이라 적혀 있다.
왜 자꾸 엉뚱하게 쓰다 소키치한테 탓 지우냐?
애초에 대한제국의 국사편찬위원회가 정한건데.
무슨 얼어죽을 식민사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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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교과 동국사략(中等敎科 東國史略)』 은 현채가 학부 재직 시절인 1906년 발행한 『동국사략』을 1907년에 2판을 발행하면서 책 제목을 『중등교과 동국사략』으로 바꾸고 편찬한 중등용 한국사교과서이다. 총 4권 2책으로 구성되었으며 국한문으로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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