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사풍후의 '한국의 전쟁의 기원 브루스 커밍스 김자동 옮김 책 일부 필기 ===테마 음악======================= https://youtu.be/CC8fv91InEs?si=fOzplDmG1xw_6CEY ================================== // 해방 후 첫해 동안의 북한에서의 변화가 급격했던 것은 남부에 대한 ‘전시적 효과’를 노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식민 잔재의 능률적이며 철저한 청산의 인상은 남부의 정체와 폭력에 대한 대조를 이루고자 했기 때문이며, 실제로 대조가 되었던 것이다. 북쪽바람은 계속 남하하는 난민들에 의하여 실려 왔으며 이들은 더 이상의 불안을 야기하는 효과를 지녔기 때문에 남부에 있어서 북한측의 트로이 목마 역할을 하였다. 1945년 가을부터 남한의 신문들은 자주 북한의 변화에 관해 보도하였다. 좌익뿐만 아니라 온건파 신문들도 각종 개혁을 찬양했으며, 일반적으로 우익 신문들이 게재한 만행과 약탈의 보도를 일소에 붙였다. [근역주보]가 북한의 정책을 남한과 대조시킨 표본적 실례를 제공했다. “소련군의 정책은 미군과 다르다. 소련군은 북한에 진주하자 즉시 일본군의 무장을 해제시켰으며 일본인들의 좋은 의복을 벗기고…. 일인 소유 주택을 집 없는 한인들에게 주고, 그들의 재산을 한인들에게 주고, 정치 및 경제적 권력을 완전히 조선인민의 수중으로 넘겨주었다.”_[근역槿域) 주보], 1945년 11월 26일자에 기고한 안기성의 글. 북한 주재 소련 사령부의 역할이 어떠했던간에 북한측은 남한사람들로 하여금 인민위원회가 능률적인 통치기구라는 것을 믿게 했다. 예를 들어 온악중은 북한 어디를 여행하든지 인민위원회의 간판을 볼 수 있으며 그것은 “인민 자신의 손으로 만든” 정부의 “:새로운 형태”라고 서술했다. 이것은 “인민에 의한,인민을 위한” 정부라는 것이었다. (G-2 “Weekly Report,” 제37호, 1946년 3월 10~17일.) 우익 소식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