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시대 초기 병신이 되어있던 낙랑군 The early Three Kingdoms period when Nakrang-gun was crippled.

 The early Three Kingdoms period when Nakrang-gun was crippled.

삼국지 시대 초기 병신이 되어있던 낙랑군 





글쓴이 : 책사풍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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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시즌2後漢의] 환제桓帝·영제靈帝 말기末期에는 

한韓과 예濊가 강성하여 [한漢 왕조의] 군郡·현縣이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니, 

[군현郡縣의] 많은 백성들이 한국韓國(=마한)으로 유입되었다.

건안建安 연간(A.D.196~220; 백제百濟 초고왕肖古王 31년~구수왕仇首王 7년)에 

공손강公孫康이 (낙랑군의) 둔유현屯有縣 이남의 황무지를 분할하여 

대방군帶方郡으로 만들고, 공손모公孫模·장창張敞 등을 파견하여 

한漢나라의 흩어진 백성(遺民)을 모아 군대를 일으켜서 한韓과 예濊를 정벌하자, 

[한韓·예濊에 있던] 옛 백성들이 차츰 돌아오고, 이 뒤에 왜倭와 한韓은 드디어 대방帶方에 복속되었다."_삼국지 동이전 마한편 


삼국지 시대 초기 병신이 되어있던 낙랑군.



낙랑군의 많은 백성들이 한국(마한)으로 끌려가거나 혹은 탈출.



이 시기 마한과 예(=동예=삼국사기 백제본기엔 '말갈'로 나옴.)가 '강성'했다. 



이 시기 마한의 왕으론 어떤 자가 있었을까.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따르면 초고왕,구수왕이 있다. 비록 백제의 왕인 것처럼 나오지만



삼국사기 백제본기 근초고왕편을 보면 근초고 때부터 비로소 백제의 역사를 적기 시작했다고 나오기 때문에



근초고 이전의 백제 왕들은 사실은 백제 왕이 아니라 마한의 부족국들의 대족장들의 얘기들일 수 있다.



다시 본래 하던 삼국지 동이전 얘기로 돌아와서...,





이대로 놔두면 낙랑군이 사라져버릴 수도 있는 일. 이를 보다 못한 요동의 공손씨 가문이 끙...갈!하고 낙랑군의 둔유현 남쪽의 황무지(인간들이 다 떠나버려서 



황무지가 되어있는 낙랑군 남부 지역)를 낙랑군에서 분할해서 '대방군'이란 새로운 식민지를 뚝딱 만듬.



그리고 공손모,장창 2명의 장군을 보내서 한나라의 흩어진 백성들을 모음. 



그런 연후에 군대를 일으켜서 마한,진한과 동예를 이랴 하고 정벌함.



그러자 마한,진한,동예로 끌려갔던 옛 낙랑의 백성들이 차츰 차츰 돌아옴. 



그러자 그 후, 왜(倭)와 한(韓)은 대방에 복속됨.



이것은 왜(倭)와 한(韓)으로 가는 무역로를 공손씨의 대방이 장악했다는거.


[The early Three Kingdoms period when Nakrang-gun was crippled.


Author: Chaeksa-Pung-Hoo

"At the end of the reign of Emperor Huan and Emperor Ling of the Eastern Han Dynasty, Han and Ye were powerful, and the Han dynasty could not properly control its military counties and districts. Therefore, many people from these regions migrated to Korea (Mahant).


During the Jian'an period (A.D.196~220; 31st year of King Chogo of Baekje and 7th year of King Gusu), Gongsun Kang divided the deserted land south of Dunyou County in Nakrang-gun into Daebang-gun, and dispatched people such as Gongsun Mo and Zhang Chang to gather the scattered people of the Han dynasty to raise an army to punish Han and Ye. As a result, the old people who had been in Han and Ye gradually returned, and after this, Wa (Japan) and Han (Korea) finally subjugated to Daebang."_ Three Kingdoms, Dongyi Chronicles, Mahan Chron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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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arly Three Kingdoms period when Nakrang-gun was crippled.


Many people of Nakrang-gun were drawn to or escaped to Korea (Mahan).


During this period, Mahan and Ye ('Dongye' appears as 'Malgal' in the Baekje Chronicles of the Samguk Sagi) were powerful.


Who could have been the king of Mahan at this time?


According to the Baekje Chronicles of the Samguk Sagi, there were Kings Chogo and Gusu. Although they appear as kings of Baekje,


According to the Chronicles of King Geunchogo in the Baekje Chronicles of the Samguk Sagi, it says that the history of Baekje began to be written from the time of Geunchogo,


so the kings of Baekje before Geunchogo might actually be the stories of the tribal chiefs of Mahan.


Back to the original topic of the Three Kingdoms, Dongyi Chronicles...


If left as it is, Nakrang-gun could disappear. The Gongsun family from Yeodong, who couldn't bear this, took the deserted land south of Dunyou County in Nakrang-gun and made a new colony called 'Daebang-gun'.


Then, they sent two generals, Gongsun Mo and Zhang Chang, to gather the scattered people of the Han dynasty.


After a while, they raised an army and punished Mahan, Jinhan, and Dongye.


Then, the old people of Nakrang who had been drawn to Mahan, Jinhan, and Dongye gradually returned.


After that, Wa (Japan) and Han (Korea) were subjugated to Daebang.


This means that the trade routes to Wa (Japan) and Han (Korea) were dominated by the Gongsun family's Daebang.] 


"[한나라 시즌2後漢의] 환제桓帝·영제靈帝 말기末期에는 

한韓과 예濊가 강성하여 [한漢 왕조의] 군郡·현縣이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니, 

[군현郡縣의] 많은 백성들이 한국韓國(=마한)으로 유입되었다.

건안建安 연간(A.D.196~220; 백제百濟 초고왕肖古王 31년~구수왕仇首王 7년)에 

공손강公孫康이 (낙랑군의) 둔유현屯有縣 이남의 황무지를 분할하여 

대방군帶方郡으로 만들고, 공손모公孫模·장창張敞 등을 파견하여 

한漢나라의 흩어진 백성(遺民)을 모아 군대를 일으켜서 한韓과 예濊를 정벌하자, 

[한韓·예濊에 있던] 옛 백성들이 차츰 돌아오고, 이 뒤에 왜倭와 한韓은 드디어 대방帶方에 복속되었다."_삼국지 동이전 마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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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国時代初期に弱体化していた羅郡


作者:本書風後

「[東漢] 桓帝・霊帝末期には、韓と濊が強大化し[漢王朝の] 郡県が適切に統制できなくなり、多くの人々が韓国(=馬韓)へと流入した。建安年間(A.D.196~220;百済初古王の31年~仇首王の7年)に、公孫康が羅郡の屯有県南部の荒野を分割し、帯方郡にし、公孫模・張敞らを派遣し、散らばった漢の民を集めて軍を起こし、韓と濊を討つと、旧民が次第に帰ってきて、その後、倭と韓はついに帯方に服属した。」-三国志 東夷伝 馬韓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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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国時代初期に弱体化していた羅郡。


羅郡の多くの人々が韓国(馬韓)に引き寄せられたり、逃げたりした。


この時期の馬韓と濊(=東濊=三国志記百済本紀には「靺鞨」として登場)が強大化していた。


この時期の馬韓の王にはどのような人がいたのだろうか。


三国志記百済本紀によれば、初古王、仇首王がいる。確かに百済の王のように登場するが、


三国志記百済本紀 近肖古王篇を見ると、近肖古の時からようやく百済の歴史を記すようになったと記されているので、


近肖古以前の百済の王たちは、実際には百済の王ではなく、馬韓の部族国の大族長の話だった可能性がある。


再び、元々の話である三国志東夷伝に戻ると...。


このまま放置すれば、羅郡は消え去る可能性がある。それを見かねた烏棘の公孫氏族が、羅郡の屯有県南部の荒野(人々が全て去ってしまい荒野となった羅郡南部地域)を羅郡から分割して、「帯方郡」という新たな植民地を作成した

のだ。


そして公孫模、張敞の二人の将軍を派遣して、漢の散り散りになった民を集める。


その後、軍を起こして馬韓、辰韓、そして濊を討伐する。


すると、馬韓、辰韓、濊に連れ去られていた旧羅郡の民が次第に次第に帰ってくる。


そしてその後、倭(わ)と韓(かん)が帯方に服属する。


これは、倭(わ)と韓(かん)への交易路を公孫氏の帯方が掌握したということ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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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시대 초기 병신이 되어있던 낙랑군.


낙랑군의 많은 백성들이 한국(마한)으로 끌려가거나 혹은 탈출.


이 시기 마한과 예(=동예=삼국사기 백제본기엔 '말갈'로 나옴.)가 '강성'했다. 


이 시기 마한의 왕으론 어떤 자가 있었을까.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따르면 초고왕,구수왕이 있다. 비록 백제의 왕인 것처럼 나오지만


삼국사기 백제본기 근초고왕편을 보면 근초고 때부터 비로소 백제의 역사를 적기 시작했다고 나오기 때문에


근초고 이전의 백제 왕들은 사실은 백제 왕이 아니라 마한의 부족국들의 대족장들의 얘기들일 수 있다.


다시 본래 하던 삼국지 동이전 얘기로 돌아와서...,



이대로 놔두면 낙랑군이 사라져버릴 수도 있는 일. 이를 보다 못한 요동의 공손씨 가문이 끙...갈!하고 낙랑군의 둔유현 남쪽의 황무지(인간들이 다 떠나버려서 


황무지가 되어있는 낙랑군 남부 지역)를 낙랑군에서 분할해서 '대방군'이란 새로운 식민지를 뚝딱 만듬.


그리고 공손모,장창 2명의 장군을 보내서 한나라의 흩어진 백성들을 모음. 


그런 연후에 군대를 일으켜서 마한,진한과 동예를 이랴 하고 정벌함.


그러자 마한,진한,동예로 끌려갔던 옛 낙랑의 백성들이 차츰 차츰 돌아옴. 


그러자 그 후, 왜(倭)와 한(韓)은 대방에 복속됨.


이것은 왜(倭)와 한(韓)으로 가는 무역로를 공손씨의 대방이 장악했다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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