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메르 황금 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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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메르 황금 투구 // User خوذة الملك السومري مسكلمدق او (ماصدوقا ) ( بطل الارض الطيبة ) كانت موجودة في خزينة البنك المركزي العراقي واصبح مصيرها مجهول بعد دخول الجيش الأمريكي الى البنك المركزي ( تمت سرقتها من قبل الجيش الأمريكي ) "خوذة ملك كيش" من حوالي 2700 ق.م خوذة ذهبية عثرَ عليها ليونارد وولي في مقبرة اور الملكية صُنع هذا النوع من الخوذ ليبدو مثل شعر مرتديها ، مع كعكة معقودة في الخلف وشريط منسوج في الأعلى. نظرًا لأنها مصنوعة من الذهب ، فقد كان يُفترض دائمًا أن الخوذة كانت رمزًا للملكية. فيبدوا أنها خوذة خاصة فقط بالملك السومري الذي يحكم سومر ويغزوا آكاد والملك الأكدي الذي يغزوا سومر ويحكم كليهما ولذلك يُطلق على من يحكم سومر وآكاد "ملك كيش" الواضح أن هذه الخوذة خاصة بالملك من سلالة أور الأولى لأن العديد من القطع التي عثر عليها في المقبرة تعود إليه وهو حرفياً كان ملك كيش (ملك سومر وآكاد) وقد ارتدى سرجون الكبير نفس الخوذة الذهبية لأنه ايضاً حكم سومر وآكاد. GPT "수메르 왕 메스칼마두크(또는 마스도카)의 헬멧은 '훌륭한 땅의 영웅'이라고도 불렸으며, 이라크 중앙은행의 보관소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군이 중앙은행에 진입한 후 그 운...

666짐승 디오니소스 바쿠스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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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6짐승 디오니소스 바쿠스 유물  Mosaic Museum متحف الموزاييك 2019년 10월 14일  ·  فسيفساء تصور باخوس أو ديونيسوس (إله الخمر ) وهو يمتطى أسد و يرتشف من كأس و اللوحة محاطة بإطارين الأول من الداخل مزين بأكاليل مزخرفة بأوراق و فاكهة و أقنعة مسرحية و الإطار الثانى زخرفى . منزل فاون - بومبى - إيطاليا . تؤرخ إلى القرن الثانى قبل الميلاد . متحف الآثار - نابولى - إيطاليا . 파초나 디오니소스(와인의 신)가 사자를 타고 잔을 한모금 마시며 그림은 두개의 액자로 둘러싸여 있다. 첫번째 안쪽은 잎과 과일, 극장 가면으로 장식된 화환으로 장식하고 두번째 액자는 장식용이다. 펀 하우스 - 봄베이 - 이탈리아 . 그것은 기원전 2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고학 박물관 - 나폴리 - 이탈리아 .

한국의 전쟁의 기원 브루스 커밍스 김자동 옮김 책 일부 필기 231230

책사풍후의 '한국의 전쟁의 기원 브루스 커밍스 김자동 옮김 책 일부 필기 ===테마 음악======================= https://youtu.be/CC8fv91InEs?si=fOzplDmG1xw_6CEY ================================== // 해방 후 첫해 동안의 북한에서의 변화가 급격했던 것은 남부에 대한 ‘전시적 효과’를 노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식민 잔재의 능률적이며 철저한 청산의 인상은 남부의 정체와 폭력에 대한 대조를 이루고자 했기 때문이며, 실제로 대조가 되었던 것이다. 북쪽바람은 계속 남하하는 난민들에 의하여 실려 왔으며 이들은 더 이상의 불안을 야기하는 효과를 지녔기 때문에 남부에 있어서 북한측의 트로이 목마 역할을 하였다. 1945년 가을부터 남한의 신문들은 자주 북한의 변화에 관해 보도하였다.  좌익뿐만 아니라 온건파 신문들도 각종 개혁을 찬양했으며, 일반적으로 우익 신문들이 게재한 만행과 약탈의 보도를  일소에 붙였다.  [근역주보]가 북한의 정책을 남한과 대조시킨 표본적 실례를 제공했다.  “소련군의 정책은 미군과 다르다. 소련군은 북한에 진주하자 즉시 일본군의 무장을 해제시켰으며  일본인들의 좋은 의복을 벗기고…. 일인 소유 주택을 집 없는 한인들에게 주고, 그들의 재산을 한인들에게 주고, 정치 및 경제적 권력을 완전히 조선인민의 수중으로 넘겨주었다.”_[근역槿域) 주보], 1945년 11월 26일자에 기고한 안기성의 글. 북한 주재 소련 사령부의 역할이 어떠했던간에 북한측은 남한사람들로 하여금 인민위원회가 능률적인 통치기구라는 것을 믿게 했다. 예를 들어 온악중은 북한 어디를 여행하든지 인민위원회의 간판을 볼 수 있으며 그것은 “인민 자신의 손으로 만든” 정부의 “:새로운 형태”라고 서술했다.  이것은 “인민에 의한,인민을 위한” 정부라는 것이었다. (G-2 “Weekly Report,” 제37호, 1946년 3월 10~17일.) 우익 소식통...

스페인 독감과 히틀러 집권의 관계

 스페인 독감과 히틀러 집권의 관계  // GPT-4 User 스페인 독감과 2019년 12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관계 ChatGPT 스페인 독감(1918년 대 유행)과 2019년 12월에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COVID-19) 사태는 모두 글로벌 팬데믹인데, 여러면에서 유사성과 차이점이 있습니다. 다음은 두 팬데믹의 몇 가지 주요 관계 및 차이점입니다: 유사점 규모와 영향 : 두 질병 모두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대규모 사망자를 초래했습니다. 전염성 : 두 질병 모두 높은 전염성을 가지며, 공기 중 전파 또는 접촉 전파를 통해 쉽게 확산되었습니다. 공중보건 대응 : 두 사태에서 모두 정부와 공중 보건 기관이 대규모 격리, 사회적 거리두기 및 다른 공중보건 조치를 시행했습니다. 경제적 영향 : 두 사태 모두 세계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며, 경제 활동의 중단과 실업률의 상승을 초래했습니다. 차이점 시간대 : 스페인 독감은 1918-1919년에 발생했으며, COVID-19는 2019년 말부터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원인 바이러스 : 스페인 독감은 H1N1 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에 의해 일으키어졌으며, COVID-19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SARS-CoV-2에 의해 발생했습니다. 치료 및 예방법 : COVID-19의 경우, 과학자들이 빠르게 백신을 개발하고 투여하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스페인 독감 당시에는 현대적인 백신 기술이 없어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더 취약했습니다. 통신 및 정보 전파 : 1918년에는 현대적인 통신 수단이 부족했으므로 정보 전파가 느렸습니다. 2019년에는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빠르게 전파되었습니다. 의료 기술의 발달 : 1918년과 비교하여 2019년에는 의료 기술이 훨씬 발달했으며, 진단과 치료 방법이 더욱 다양하고 효과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유사점과 차이점은 두 팬데믹이 역사적 맥락에서 어떻게 비교되는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User 히틀러의 집권과 스페인...

고려의 무인들과 일본의 사무라이들에게 쏘아진 어떤 이상한 기운

 고려의 무인들과 일본의 사무라이들에게 쏘아지는 어떤 이상한 기운? 서기 12세기  더 정확히로는 헤이지(평치=平治) 원년인 서기 1159년.  당시 일본은 고려와는 달리 당당히 황제국을 선언했기 때문에 황제국의 달력을 쓰고있었다. 그래서 연(年)에는 천황이 선포한 연호를 붙였다. 그것이 평치 ...  서기 1159년은 평치의 1번째 해로 원년(元年)이다.....   그리고 이때는 미나모토 요리토모의 아들 미나모토 요시츠네가 태어났다고 정사에 적혀있는 해이기도 하다. 이 때 일본에서 귀족들 시중이나 들던 사무라이들 중 칸무 천황(백제 무령왕의 후손인 백제계 여자의 후손)의 피가  흐르는 '타이라(평씨=平氏=平家=헤이케)' 사무라이의 수장 타이라 키요모리가  라이벌 미나모토 요리토모를 쳐발라버리고 일본열도의 지배자가 된다.   타이라 키요모리 : 이끼끼! 미나모토 요리토모 : 꾸엑 (도망치다가 배신당해 목 잘림) 한편 고려는 여전히 무사들은 귀족들의 천대와 차별을 받았다. 이에 불만을 품고 서기 1170년 정중부,이의방 등 무사들이 거병하여 귀족들을 도륙 대학살하고 고려 왕 의종을 폐위시키고 유배 보낸다.   딱 11년의 차이를 두고 일본에서 무신 정변이 일어나고, 그 후 11년 후에야 고려에서 무신 정변이 일어났다. 무신 정변의 첫 주역이자 고려의 첫 쇼군인 정중부는 서기 1179년 9월 16일 (음력)에 또 다른 무사인 '경대승'에게 반란 당해 뒤졌다. 타이라 키요모리는 서기 1181년 3월 20일에 사망했다.(자연사) 정중부와 타이라 키요모리의 사망 시기는 놀랍게도 몇년의 차이를 두고있을 뿐이다. 타이라 키요모리의 사망 전인,   서기 1180년 4월, 모치히토 왕자는 일본 전국에 숨어있는 미나모토 가문들에게 타이라를 타도하라고 영지(令旨)를 써서 보내고 이끼끼하며 봉기했다가 한달만에 타이라에게 토벌되어 비참하게 최후를 맞았다. 하지만...

고죽과 낙랑의 관계

 고죽과 낙랑의 관계  //하룻밤에 읽는 고죽국 역사  ​ 고죽국은 베이징 동북쪽 난하 방면에 있으며, 은나라 피가 섞인 북방 야만족으로 기원전 7세기 때 중국 산동반도의 군벌인 환공이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정벌하여 고죽과 이웃 마을 '영지' 뿐 아니라  요서 조양시의  '도하'란 종족과 요서 홍산의 '산융'까지 모두 환공에게 격파되어 복속당했습니다. (이 산융,고죽,영지,도하가 바로 비파형동검을 처음으로 만든 요서의 패왕 기마민족 '하가점상층문화'입니다.) 그후 베이징의 연나라 문화의 영향이 서서히 들어와서 비파형동검 문화의 중심지는 요동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요서에서 비파형동검 문화가 창성할 조짐을 전국시대 초기 쯤에 보이다가 연나라 장수 진개에게 정벌당해 요서는 물론 요동까지 연나라 땅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고조선 문화는 북한 땅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 //그런데 혹자들은 고죽국이 있던 곳(베이징 동북쪽 난하 방면)에 '낙랑'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 //낙랑이란? 낙랑은 고조선 말기 위만조선 당시 위만조선의 심장부인 북한 평양 일대를 일컫던 지명 혹은 고조선의 또 다른 국호로 추정됩니다. 한나라가 고조선 그러니까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식민지를 설치할 때 식민지의 이름을 '낙랑'이라 하였습니다. ​ //베이징 혹은 난하 쪽에 낙랑이 있다는건 사이비들의 주장  어떻게 한나라가 설치한 식민지 낙랑이 난하의 고죽에 있겠습니까. 북한 땅에 있다고 봐야 맞습니다. ​ //하룻밤에 읽는 낙랑군의 커맨드센터 이동 서기 313년 고구려 미천왕이 얍얍하고 퍽퍽 패서 낙랑군이 으악하고 만주 서쪽 요서로 날라갔습니다.(중국 기록에 그렇게 나옵니다.)  그때 요서에는 '모용선비'란 무시무시한 기마민족이  살고있었습니다. ​ 그 후 서기 420년 쯤 고구려 장수왕 때 고구려의 영향력이 요서에까지 미치고 있었습니다. 서기 420년 쯤 북위 황제가 요서 모용선비 땅으로 이사가있...

책사풍후의 패수(浿水)의 위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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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사풍후의 패수(浿水)의 위치 연구 패수(浿水)의 위치 사마천의 '사기'의 조선전을 보면 한나라 침공군 중 육군 5만은 요동을 떠나 패수(浿水)로 돌격한다. 그때 패수의 서쪽엔 위만조선 육군이 주둔하고 한나라 육군을 참패시킨다. 한나라 수군 7천은 산동반도에서 바로 바다를 건너 위만조선의 수도 왕험성 근처 '열구'에 상륙한다. '열구'는 '열수'란 강물의 하구다. 바로 왕험성으로 개돌하려다가 우거왕이 바로 뛰쳐나와서 쳐발라버리니 한나라 수군은 사방으로 흩어져버렸다.  근데 결국 패수 서쪽 혹은 패수 위에 주둔하던 위만조선 육군은 한나라군의 인해전술에 쳐발리고 왕험성으로 퇴각한다. 한나라 육군은 패수를 건너 바로 왕험성에 당도한다. 사기 조선전 기록을 보면 위만조선의 수도 왕험성은 해변가 가까이 있고, 패수로부터 얼마 안되는 거리에 있고, 패수 근처에 '요동'이란 땅 혹은 한나라의 식민지 요동군의 한 마을이 있을 수 있다. 왕험성과 패수 사이에는 또 다른 강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왕험성은 강으로 둘러싸인 섬같은 지형일수도 있다. 그리고 왕험성 근처엔 '열수'란 강물의 '하구'가 있다. // 1. 위만조선의 수도 왕험성은 해변가 가까이 있고, 패수로부터 얼마 안되는 거리에 있고, 2. 패수 근처에 '요동'이란 땅 혹은 한나라의 식민지 요동군의 한 마을이 있을 수 있다. 3. 왕험성과 패수 사이에는 또 다른 강이 없음을 알 수 있다. 4. 어쩌면 왕험성은 강으로 둘러싸인 섬같은 지형일수도 있다. 5. 그리고 왕험성 근처엔 '열수'란 강물의 '하구'가 있다. // 그런데 이런 정리를 헷갈리게하는 사료가 있다. 낙랑군 누방현에서 흘러나와 동남쪽으로 흘러 임패현을 지나 바다에 빠지는 패수浿水(수경,설문해자) 수경과 설문해자의 기록이 그것인데. 수경은 서기 5세기 때의 기록이라서 낙랑군이 요서,베이징으로 이사간 당시의 ...